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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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를 거 없었다.
남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오전에서 오후로 곧 넘어갈 듯 느지막히 해가 정상을 향해 달려갈 때 가게의 문을 연다. 가게의 문을 열고, 바닥을 청소하고 예민한 책들의 상태를 확인하면 점심시간이 된다. 근처에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가지고 와, 문 근처에 가지런히 놓인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식사를 끝낸다. 손님이 오기 전에 그 주변을 다시 정리하면 학교에서 돌아온 몇몇 학생들이 들어온다. 학생들은 조용한 책방에 유일한 소란이다. 남학생들의 소리는 가끔 서로의 몸을 툭툭 치는 둔탁한 소리가 함께 하고, 여학생들의 소리는 가끔 까르륵 밝게 터지는 웃음이 함께 한다. 며칠에 한 번씩, 책을 사가는 손님들도 온다. 나이대는 다양하다.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젊은이들부터 어디론가 급하게 가다가 발걸음을 문득 멈춘 듯이 보이는 중년들까지. 책을 계산하고 있노라면 가끔 덩치 큰 정장의 이들도 찾아온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런 질문에 남자는 긴 말 대신 몇 마디 단어들로 그 일에 대답을 하곤 한다. 남자의 말에 그들이 떠난다. 밤이 찾아와 긴 어둠을 내려놔도 남자는 오랫동안 가게 문을 닫지 않다가 문을 닫고 늦게까지 하는 가게에 찾아가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가게 위로 올라가 2층의 방에 가 그 날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다가 덮고는 일기장을 펼쳐 몇 글자를 느리게 적는다.
정말로 별 다를 거 없었다. 삶은 그렇게 돌아온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비명을 지르는 일이 있어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정상궤도를 찾아 돌아왔다.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조차 그렇게 사그라진다.
아니, 사그라지는 게 아니라.
펜을 쥐고 있는 남자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건 사그라지어 묻히는 것이 아니라, 한 알 한 알 박혀서 떨어지지 않다보니 익숙해진 거였다. 그는 이제 울지 않았다.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덤덤하게, 태양 대신, 달 대신 자신의 몸을 불태워 빛을 내는 숲 안에 늘 서있을 뿐이었다. 슬픔은 그렇단다, 아가. 듣지 못하는 상대에게, 남자는 말을 걸었다.
일기장의 끝에 From. Eliot, who still love you. 라는 문장을 마무리 짓고는 남자는 잠을 청한다.
별 다를 거 없었다.
일상도.
슬픔도.